한자의 벽에 갇힌 전통을 구하라
이름 : ()   날짜 : 2006.08.01   조회 : 43
[한국일보 2006-07-28 18:18]

국가문헌만 3,300여책 기록유산 방대…현재 속도로 번역하면 100년 걸려
정부지원 늘었지만 체계적 계획 미흡

“고전 번역 없이는 더 이상 과거와, 역사와 소통할 수 없게 된다. 소통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고 대립과 단절, 충돌과 부정으로 이어진다. 번역을 통한 과거와의 소통, 지식의 보급은 국가의 역량이 된다.”

최근 학술진흥재단 정책연구 사업으로 ‘국학진흥을 위한 기획조사 연구’ 보고서를 낸 신승운 성균관대(문헌정보학과) 교수는 한자라는 틀에 갇혀 망각의 늪에 빠진 고전을 국역해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일종의 ‘민주화’라 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기록문화 유산을 자랑한다. 조선시대 임금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작성한 ‘승정원일기’3,245책의 글자수는 2억4,125만여자에 달한다. 중국 명나라 294년의 역사를 기록한 명실록의 글자수가 1,600여만자인 점과 비교하면 그 방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16대 인조(재위 1623~1649)부터 고종까지 승정원일기 중 한글로 옮겨진 것은 고종때 것 뿐이다.

꼭 번역해야 하는 고전은 얼마나 되고, 언제쯤이면 ‘까막눈’신세를 면해 조상의 남긴 글을 쉽게 볼 수 있을까. ‘국학진흥을 위한 기획조사 연구’에 따르면 한 해 동안 60여책을 번역하는 현재의 여건 대로라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국가 기록물(국고문헌) 전체 3,300여책 중 번역이 안된 2,500여책, 문집 등 일반 고전 가운데 번역이 필요한 4,000여책을 모두 번역하는 데는 100년이 걸린다.

민족 문화와 사상의 정수인 막대한 기록 문화를 눈 앞에 두고 그대로 썩히는 셈이다. 박헌순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장은 “옛 기록에 어떤 보물이 들어 있는지 ‘나 몰라라’ 하면서 기능이나 음식, 옷 등만 우리 전통이라고 하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1966년 1,000만원의 정부 지원으로 시작한 고전 국역 사업은 40년 만인 지난해 43억 지원, 연간 60여책 번역 등 외형적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

우선 정부의 예산 지원이 국고보조금 형태여서 지원 액수가 들쭉날쭉하고, 회계연도 내에 지원 사업을 마무리해야 하는 탓에 단기 실적 위주로 번역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여러 사람에게 번역을 나눠 맡긴 뒤 취합하는 ‘분할번역’, 번역의 대부분을 부업식으로 외부에 부탁하는 ‘위촉번역’ 등 번역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정부 주도인 중국 대만 독일 등과 달리 민족문화추진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 민간단체가 번역의 대부분을 맡고, 번역 인력 양성도 연구 중심인 학위 과정과 독해 중심인 비학위 과정으로 나뉘어 있다. 그렇다고 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밑그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학계에서는 한문 고전 번역을 전담하는 정부출연기관(가칭 ‘한국고전번역원’)과 전문 번역 교육기관(가칭 ‘한국고전번역대학원’) 설립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에 대해선 교육부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한 전문가는 국역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요즘 한창 방영되는 고구려 관련 사극에서 신하들이 왕에게 ‘사료되옵니다’고 하는데 ‘사료’는 조상들이 전혀 쓰지 않은 말이다. 당장 나라에서 펴낸 국어사전부터 우리 고전에서 용례를 따지 못해 70만 단어 중 20만개 이상이 선조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는 말로 대신 했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
대학…국역연수원 등 비학위과정…어학에 치우쳐 번역교육 소홀
이름 : ()   날짜 : 2006.08.01   조회 : 45
[한국일보 2006-07-28 18:12]

1980년대에 서울대에 한문학과 신설안이 나왔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한문학이 국문학의 한 장르라는 입장에 밀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한문 고전의 바다를 누비며 그 정신의 정수를 현대 한글로 옮기는 이들은 어떤 교육을 통해 전문가로 양성되고 있을까.

한문 고전 교육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대학의 한문ㆍ국문학과 등 학위 과정과 ‘서당’의 전통을 이어온 비학위 과정이다. 하지만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에 마련된 학위과정의 한문 교육은 대부분 어학교육에 치우쳐있고, 고전번역 강좌는 거의 전무하다.

비학위 과정으로는 국고로 운영되는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이 대표적이다. 명칭에서 보듯, 이 기관의 설립 목적은 ‘한국 고전의 현대화를 담당할 인재 양성’이다. 그리고 현재의 한문고전 주축 역자군(55명)의 85%가 이곳 출신이다. 이 밖에 ‘지곡서당’으로 불리는 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 한문연수원, 전통문화연구회의 고전연수원 등이 3년 내외의 고급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비학위 과정도 문제는 있다. 성균관대 신승운(문헌정보학과) 교수가 지난 4월 발표한 ‘국학진흥을 위한 기획조사 연구’에 따르면 비학위 기관들의 커리큘럼 역시 원전 강독에 치우쳐 있다.

읽고 이해하는 어학교육 중심이지, 고전의 현대어 번역교육이나 고전 본래의 의미를 추구하는 고전교육과는 거리가 있다는 의미다. 그나마 민족문화추진회 과정의 일반ㆍ상임 연구부에 각각 17%와 33%의 국역실습 과정이 있는 정도다. 학위도 없고 장래가 확실한 것도 아닌 탓에, 번역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높다는 점(평균 37.8세)도 문제로 지적된다.

신 교수는 “고전 번역이 이 정도라도 성과를 낸 것은 과거 ‘조선왕조실록’번역 등을 둘러싸고 역사적 정통성을 선점하기 위해 남북이 벌인 경쟁 덕분이기도 하다”며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도 이론(고전연구)과 실제(번역)를 보완할 전문 연구ㆍ교육기관이 신설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고전국역 : 위기를 넘어 전례 없는 양적 성장을 이룬 한해 / 하정승

 

Ⅰ. 2002년도 국역계의 동향

본고에서는 2002년도 고전국역 현황을 정부의 지원을 받아 기관에 의해 발간된 국역서와 개인에 의해 민간 출판사를 통해 간행된 국역서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작년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문고전 국역서를 발간한 기관으로는 민족문화추진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전통문화연구회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전통문화연구회를 제외한 다른 기관은 오래 전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국역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전통문화연구회는 ‘동양고전역주총서’라는 시리즈로 2001년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국역서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들 기관에 의해 발간된 한문 국역서(한글고전 역주서 및 색인집 포함)는 민족문화추진회 13종 50책, 세종대왕기념사업회 6종 12책, 전통문화연구회 1종 1책 등 총 20종 63책이다. 개인에 의해 번역되어 민간 출판사를 통해 간행된 국역서는 대략 20여종이 조금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표1>에 나타난 바와 같이 2002년도 기관간행 국역서는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민족문화추진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발간된 13종의 국역서를 내용상 분류해보면, 일반 문집류 ‘집부(集部)’ 번역 6종, 역사류 ‘사부(史部)’ 번역 3종, 문집류 색인 4종이다. 종수로만 보면 문집류가 역사류보다 많지만, 책수로는 「승정원일기」와 「일성록」등 역사류가 총 34책으로 전체 발간 국역서의 68%를 차지한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역시 총 6종의 서적중 불경류(佛經類)가 4종, 역사류가 2종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개인에 의해 이뤄진 국역서는 <표2>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전체 22종 가운데 문집류가 18종을 차지해 문학중심으로 국역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보건대 정부의 보조를 받아 진행되는 기관의 국역사업은 국학연구의 1차 자료라 할 수 있는 역사류 등의 국고문헌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문학작품이나 개별 작가의 문집에 대한 국역은 그 방면의 연구를 하는 개인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경전이나 역사류의 자료들이 일반 개인 문집보다 양이 방대할 뿐 아니라, 그 책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생각할 때 기관에 의해 국역이 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 하겠다.
2002년도 국역계의 전체적 흐름을 이야기해 본다면, 첫째 민족문화추진회나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같은 기관은 모두 새로운 사업의 시작보다는 전년도까지 진행해 온 사업의 계속적인 추진에 역점을 두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둘째로 전술했다시피 사료(史料)의 성격을 띠는 국고문헌 중심의 번역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셋째, 2001년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동양고전역주총서’라는 시리즈로 고전국역을 해오고 있는 전통문화연구회의 작업도 주목된다. 작년에 나온 1종을 포함하여 현재까지 발간된 총서 시리즈는 몇 종에 불과하지만, 이는 사업이 시작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된다.

 

<표1> 2002년도 기관간행 국역서 일람표

서명

편저자

내용

갈암집 4집

이현일

제문(祭文), 묘갈(墓碣), 행장(行狀) 등

농암집 1집·3집

김창협

부(賦), 시(詩), 서(書)

목은집 5집·6집·11집

이색

시, 표전(表箋), 찬(讚), 비명(碑銘) 등

우계집 3집

성혼

연보(年譜), 잡록(雜錄) 등

월사집 3집

이정귀

권응록(倦應錄), 대학강어(大學講語)

지산집 1집·2집

조호익

서, 축문(祝文), 제문, 연보, 역상설(易象說), 대학동자문답(大學童子問答) 등

해동역사 6집·7집

한치윤

예문(藝文), 숙신(肅愼), 비어(備禦), 인물(人物)

승정원일기 157집~179집

승정원

고종 30년 2월~고종 35년

11월

승정원일기(인조대) 1집

승정원

인조 원년 3월~12월

승정원일기(인조대) 2집

승정원

인조 3년 1월~2월

일성록 61집

규장각

정조 10년 8월 21일~9월

일성록 63집~70집

규장각

정조 10년 12월~정조 11년 12월

간이집 4집

최립

국역 간이집의 내용색인

계곡집 6집

장유

국역 계곡집의 내용색인

택당집 7집

이식

국역 택당집의 내용색인

학봉전집 6집

김성일

국역 학봉전집의 내용색인

치평요람 3·4

집현전

본문참조

국조인물고 9·10

규장각

역주 남명집언해 상·하

 

역주 원각경언해 1·2

간경도감

역주 법화경언해 3·4·5

간경도감

역주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간경도감

전국책 1

유향

 

서명

국역위원

국역기관

비고

갈암집 4집

박헌순, 이상하,

홍기은, 권경열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서

농암집 1집·3집

송기채

 〃

목은집 5집·6집·11집

임정기, 이상현

 〃

우계집 3집

성백효

 〃

월사집 3집

이상하

 〃

지산집 1집·2집

정선용

 〃

해동역사 6집·7집

정선용

 〃

승정원일기 157집~179집

김기빈, 오세옥,

정필용, 최채기 외

 〃

승정원일기(인조대) 1집

정만조(해제), 김낙철, 임희자, 정필용, 오세옥, 최채기,

정필용

 〃

승정원일기(인조대) 2집

정필용, 이정원

 〃

일성록 61집

이강욱

 〃

일성록 63집~70집

이강욱, 전현미,

김경희, 김진옥 외

 〃

간이집 4집

이성민

 〃

계곡집 6집

이정욱

 〃

택당집 7집

김덕수

 〃

학봉전집 6집

김성애, 강여진

 〃

치평요람 3·4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조인물고 9·10

 

역주 남명집언해 상·하

 

한글고전역주서

역주 원각경언해 1·2

 

역주 법화경언해 3·4·5

 

역주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전국책 1

임동석

전통문화연구회

국역서

 

2002년에 이들 기관에서 발간된 대표적인 국역서로는 「승정원일기」와 「일성록」「국조인물고」와 「치평요람」을 들 수 있다. 이 책들은 이미 수 년 전부터 국역이 진행중인 것들로서 모두 사료의 성격을 갖고 있는 국고문헌들이다. 문학류의 개인문집으로서 기관에 의해 국역이 이뤄진 것들 중에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나온 「국역 목은집」이 가장 눈에 띈다. 주지하다시피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고려를 대표하는 큰 문인이자 학자로서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문집인 「목은집」은 우선 워낙 양이 방대하여 그동안 완역이 없었는데, 민족문화추진회에서 몇 해 전부터 국역을 시작해오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연히도 역시 몇 해 전부터 한문학을 전공한 몇 명의 학자들에 의하여 「목은집」중 시만 따로 모은 「목은시고」가 공역으로 국역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한편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작년에 발간한 책 가운데 4종은 수년 전부터 벌여오고 있는 한글고전에 대한 역주 사업의 결과물인데, 한글로 된 우리 옛 문헌의 정리와 고어(古語) 연구를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개인들에 의해 이뤄진 국역서 중에서는 역대의 유명한 비평문만을 따로 모아 시대별로 분류하여 번역한 책과 또 역대 유명 작가들의 산수유기(山水遊記) 중 대표적인 작품들을 모아 번역한 책이 우선 눈에 띈다. 이러한 성격의 편역서는 번역도 번역이지만, 대상 작품을 선별하고 편찬하는 지식과 안목이 있어야 하기에 매우 힘든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된 한문소설의 역주서라든지 사대부 집안의 여성으로 시와 학문, 글씨등 다방면에 걸쳐 이름이 높았던 인물의 문집을 번역한 것, 또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정약용(丁若鏞)의 저서에 대한 역주서 등은 모두 그 의의가 매우 높다고 하겠다.

Ⅱ. 기관에 의한 국역상황

2002년도에 각 기관에서 발간된 국역서 중 주요 서적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민족문화추진회

1) 「국역 갈암집」4집
「갈암집(葛庵集)」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인 이현일(李玄逸)의 시문집으로 숙종 연간에 아들 재(栽)가 편집하고, 문인 권두경(權斗經)·이광정(李光庭) 등이 몇 차례의 교정을 거쳐 정고본(定稿本)을 완료하였으나, 당시 이현일이 1694년 갑술옥사 이후 죄적(罪籍)에 올라 있어 간행되지 못하였다. 1811년(순조 11)에 초간본이 나왔으나, 역시 조정의 금지로 문집은 회수되고 책판이 소각 당했으며, 그 후 1908년에 이르러서야 이현일의 신원과 아울러 중간(重刊)되었다. 「국역 갈암집」4집에는 원 문집 권22·23의 제문(祭文), 묘갈명(墓碣銘), 묘지명(墓地銘), 행장(行狀)등이 수록되었다.

2) 「국역 농암집」1집·3집
「농암집(農巖集)」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인 김창협(金昌協)의 시문집으로 1710년 초간본이 나온 이후로 여러차례 증보, 간행되어 현재 부록 2권을 포함한 원집 36권, 속집 2권, 별집 4권 등 42권 15책이 전한다. 「국역 농암집」1집에는 서문(序文)과 권 6까지의 부(賦)·시(詩)가, 「국역 농암집」3집에는 권14~권20의 서(書)가 실려있다.

3) 「국역 목은집」5집·6집·11집
「목은집(牧隱集)」은 고려 말의 문인·학자인 이색(李穡)의 시문집이다. 1404년(태종 4) 아들 종선(種善)에 의해 간행되었다. 이색의 시와 문은 워낙 양이 방대하여 후대에 시나 문만을 따로 모아 간행되기도 하였는데, 「목은시정선(牧隱詩精選)」「목은문고(牧隱文稿)」등이 그것이다. 「국역 목은집」5집에는 권18~권20의 시가, 「국역 목은집」6집에는 권21~권23의 시가, 「국역 목은집」11집에는 「문고」권 11이하의 표, 전, 찬, 비명, 발등이 실려있다.

4) 「국역 우계집」3집
「우계집(牛溪集)」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성혼(成渾)의 시문집으로 1621년(광해군 13) 문인들에 의하여 간행되었고, 1809년(순조 9) 7세손 긍주(肯柱)에 의해 중간되었으며, 다시 1980년 후손들에 의해 ‘파산세고(坡山世稿)’라는 이름으로 원집·속집 외에 습유·연보·연보보유·연보부록·삼선생유서(三先生遺書)·신원양현소(伸寃兩賢疏) 등이 묶여 영인되었다. 원집 6권, 속집 6권, 모두 6책이다. 「국역 우계집」3집에는 연보와 잡록(雜錄)등이 실려있다.

5) 「국역 월사집」3집
「월사집(月沙集)」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정구(李廷龜)의 시문집으로 문인 최유해(崔有海)가 1636년(인조 14) 공주에서 간행하였고, 그 뒤 몇 차례 증보 간행되었다. 모두 77권 22책(본집 63권, 별집 7권, 부록 5권, 연보 2권)이다. 「국역 월사집」3집은 원 문집 권17·18의 <권응록(倦應錄) 하>와 권 19·20의 <대학강어(大學講語)>를 수록하였다.
<대학강어>는 명나라 장수 송응창(宋應昌)의 청으로 황신(黃愼)·유몽인(柳夢寅) 등과 함께 막중에서 강론한 것이다. 「대학」의 경 1장에서부터 전 10장까지의 내용에 걸쳐 명명덕(明明德)·신민(新民)·지어지선(止於至善)·격물치지(格物致知)·성의정심(誠意正心) 등 핵심적인 내용에 관한 해석이 실려 있다. 해석 아래에는 하간부통판(河間府通判) 왕군영(王君榮)의 강기(講記)가 부기되어 있다. 명나라 장수들은 당시 중국의 학계를 지배하던 양명학(陽明學)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학자들이 정주학(程朱學)에 입각하여 경전을 풀이하는 것에 대하여 논란이 많았다. 송시열은 서에서 <대학강어>에 대하여 “<대학강어>가 한번 나오자 장구의 훈고가 각기 그 바름을 얻으니, 이것은 성현의 종지(宗旨)요 공문(孔門)의 의발(衣鉢)이다.”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6) 「국역 지산집」1집·2집
「지산집(芝山集)」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조호익(曺好益)의 시문집이다. 5권 2책의 목판본으로 이뤄진 초간본을 증보하여 1819년(순조 19)경에 6권 3책의 중간본이 간행되었다. 권1에 부·시, 권2·3에 서(書), 권4에 축문·제문·묘지명, 권5에 전(箋)·서(序)·기·발·잡저, 권6에는 이기변·제서질의가 수록되어 있다. 부록의 권1에 연보, 권2에 저자에 대한 사제문·만사·행장·시장·신도비명·묘갈명·상향문 등이, 권3에는 저자의 배향서원인 도잠(道岑)·학령(鶴翎)·청계(淸溪) 등 서원의 편액 및 시호를 청(請)하는 소와 회계(回啓)가 수록되어 있다.
「국역 지산집」1집에는 원 문집의 권1~권6까지의 시, 서, 축문, 제문 등이, 「국역 지산집」2집에는 원 문집 중 부록의 연보(年譜), 역상설(易象說), 대학동자문답(大學童子問答) 등이 실려있다.

7) 「국역 해동역사」6집·7집
「해동역사(海東繹史)」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한치윤(韓致奫)이 찬술한 기전체(紀傳體)의 한국통사로 한치윤이 지은 본편(本篇) 70권과 조카 진서(鎭書)가 보충한 속편(續篇) 15권을 합쳐 모두 85권으로 이뤄져 있다. 체재는 정사체(正史體)인 기전체를 따랐으나 표(表)는 생략했다.
이 책은 여러 역사서에서 한국 관계의 기사를 모조리 발췌한 뒤 이들을 세기(世紀)·지(志)·인물고(人物考) 등으로 유취해 편찬하고, 그 기사에 잘못된 곳이 있으면 ‘안서(按書)’를 병기(倂記)해 바로잡거나 자기의 의견을 곁들이는 방법을 취했다. 「국역 해동역사」6집에는 예문지(藝文志)가, 7집에는 인물고(人物考), 일본고(日本考), 숙신씨고(肅愼氏考) 등이 실려있다.

8) 「국역 승정원일기」157~179집, 인조 1집·2집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1623년(인조 1)부터 1910년(융희 4)까지 승정원에서 처리한 왕명 출납, 제반 행정사무, 의례적 사항을 기록한 일기로서 국보 제303호이다. 총 3,243책의 방대한 양으로 조선 초부터 기록되었으나, 인조대 이전의 것은 임진왜란과 이괄(李适)의 난 등으로 모두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승정원일기」의 내용은 월별로 작성되어 있다. 각 권 서두에 월별권강(月別勸講)·소대(召對)·개정(開政) 및 내전(內殿)의 동정을 기록하고, 이어 승지 및 주서(注書)의 명단, 그 중 당직자의 표시와 출근 실태, 끝으로 승정원의 업무 현황, 왕 및 내전(內殿)의 문안, 왕의 경연, 승정원의 인사관계, 각 분방(分房)을 통한 품계(稟啓)와 전지(傳旨)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승정원에서 매일 취급한 역대 국왕들의 하루 일과, 명령, 각 부처의 보고, 각종 회의 및 상소 등이 모두 전재되어 있어, 조선후기사 연구의 일차적 근본자료로서 평가되고 있다. 조선 후기의 기본 사료로서 조선왕조실록과 「비변사등록」, 그리고 뒤에는 「일성록」이 있으나 「승정원일기」는 국정 일반에 관해 광범한 기록을 했다는 점과 또 매일의 기록으로서 일차적 사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국역 승정원일기」157~179집은 고종 30년 2월부터 고종 35년 11월까지의 기사가 실려 있다. 「국역 승정원일기」인조 1집·2집은 인조 원년 3월부터 12월까지와 인조 3년 1월부터 2월까지의 기사가 수록되었는데, 기존의 「국역 승정원일기」와는 달리 권말에 부록으로 싣는 원문을 영인 작업이 아닌 컴퓨터 조판으로 삽입하고, 쉼표 마침표 등 문장부호를 달아주었다. 또한 매일 매일의 날짜별로 기사의 각 항목마다 일련번호를 달아 어느 날 몇번째 기사인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9) 「국역 일성록」61집·63~70집
「일성록(日省錄)」은 1752년(영조 28)부터 1910년까지 국왕의 동정과 국정을 기록한 일기로 국보 제153호이다. 2,327책의 방대한 양으로 현존하는 것은 1760년부터의 기록이다. 「일성록」은 원래 정조가 세손(世孫)으로 있을 때부터 자기의 언행과 동정을 일기로 적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규장각의 신하들로 하여금 왕이 조정에서 행한 갖가지 사실을 기록하게 하였으니, 일성록은 정조의 개인일기에서 출발하여 조정의 공식 기록으로 바뀌게 된 셈이다. 매일 매일의 기록 끝에는 그 편찬을 담당한 인물의 관직과 성명을 기재하여 책임의 소재를 밝혔으며, 신하들이 올린 소와 차자는 그 긴요한 부분만을 수록하여 요점을 쉽게 파악하도록 하였고, 임금이 내린 윤음·비답(批答)·재가 등은 전문을 실어 체제를 엄중히 하였다. 임금의 동정에 대한 기록은 간단히 하고 정사에 대한 것은 자세히 하였다.
또한 같은 일록 형식의 「승정원일기」에 비하여서는 내용이 요점 중심으로 정리되고 기사마다 표제가 붙어 있어 이용하기에 편리할 뿐만 아니라, 「승정원일기」에는 수록되지 않은 자료들이 많이 실려 있으므로 「일성록」의 사료로서의 중요성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1966년부터 ‘서울대학교 고전총서(古典叢書)’의 하나로 고종 연간과 1851년, 1852년의 기록이 영인된 바 있다. 그 뒤 1982년부터 1996년에 걸쳐 서울대학교의 도서관과 규장각에서 「익종대청시일록」을 포함하여 전체를 영인, 간행하였다. 이번 「국역 일성록」61집·63~70집에는 정조 10년 8월~9월 및 정조 10년 12월에서 정조 11년 12월까지의 기록이 실려있다.

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 「국역 치평요람」3·4집
「치평요람(治平要覽)」은 세종때 왕명에 의하여 정인지(鄭麟趾) 등 집현전 학사들에 의해 편찬된 책으로, 총 150책 중 규장각에 72책, 일본 내각문고(內閣文庫)에 147책이 전한다. 중국 주(周)나라에서 원(元)나라까지의 역사와 기자조선에서 고려시대까지의 역사중에서 국가의 흥망, 군신(君臣)의 사정(邪正), 정교(政敎), 풍속, 외환(外患), 윤도(倫道) 등 각 방면에 걸쳐 권징(勸懲) 할만한 사실들을 발췌하여 놓았다. 「국역 치평요람」은 이우성(李佑成) 선생이 일본에서 수집하여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한 책을 저본으로 하였다.

2) 「국역 국조인물고」9집·10집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는 조선조 태조 때부터 숙종대(肅宗代)까지의 여러 인물들에 대한 특징을 서술한 일종의 전기(傳記)형식의 책이다. 수록된 인물의 수는 2,000여명이 넘는 방대한 양이다. 편찬년대는 정조대(正祖代)로 추정되며, 편찬자는 미상이고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총 74권이다. 「국역 국조인물고」9집·10집은 「국조인물고」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나다순에 의거 박소(朴紹)부터 성임(成任)까지를 수록하고 있다.

3) 「역주 원각경언해」1·2
「원각경」은 옛부터 대승불교의 필수적인 경전중 하나였다. 「원각경언해」는 중국 당나라 종밀(宗密)의「원각경대소초(圓覺經大疏초)」를 세조가 토를 달고, 신미(信眉), 효령대군(孝寧大君), 한계희(韓繼禧)등이 한글로 번역하여 1465년(세조 11)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목판본 10권 10책으로 간행한 책이다.

4) 「역주 법화경언해」3·4·5
「법화경언해」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세조가 구결(口訣)을 달고 간경도감에서 언해한 책이다. 「역주 법화경언해」의 구성은 원문 띄어쓰기, 현대어 풀이, 고어와 불교용어에 대한 주해의 순서로 짜여있다. 대본은 동국대학교 소장 목판본이다.

5) 「역주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이 책은 중국 원(元)나라 때의 승려 몽산화상 덕이(德異)의 법어를 조선초의 승려 신미(信眉)가 언해한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을 현대어로 역주한 것이다. 몽산화상의 법어 6편과 고려의 보제존자(普濟尊者) 나옹화상(懶翁和尙)의 법어 1편이 실려있다.

3. 전통문화연구회

1) 「역주 전국책」1
「전국책(戰國策)」은 전한(前漢)의 유향(劉向)이 편찬한 책으로 전국시대(戰國時代) 각 나라의 흥망성쇠와 책사(策士)들의 유세, 여러 인물들의 일사(逸事) 등이 실려있다. 임종석 교수의 역주 「역주 전국책」1은 기존 역주서와는 달리 「전국책」33권을 완역하여 출간한 첫번째 책이다. 역주 「전국책」은 총 2책 500장(章)으로 간행될 예정이며 이번 「역주 전국책」1은 「전국책」중 17권 초(楚)나라 까지를 범위로 하고 있다.

Ⅲ. 개인에 의한 국역상황

2002년도에 일반 출판사에 의해 개별 발간된 국역서중 주요 서적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역주 청구풍아」
「청구풍아(靑丘風雅)」는 조선전기의 문인 김종직(金宗直)이 역대의 유명한 시들을 뽑아서 편찬한 시선집(詩選集)이다. 김종직은 난해하거나 중요한 시구(詩句)마다 자주(自註)를 달아놓는 정성을 기울였다. 신라 말기 최치원(崔致遠)부터 조선 전기 성간(成侃)에 이르기까지 126인의 한시 518수가 전체 7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번에 발간된 「역주 청구풍아」는 주석이 꼼꼼하고 독자의 편의를 위해 권말에 영인본을 달아놓고 있다.
2) 「역주 태상감응편」
「태상감응편도설(太上感應篇圖說)」은 중국 민중의 종교윤리사상에 관하여 설파한 민중도교의 경전이다. 남송의 이창령(李昌齡)이 정리하여 세상에 소개하였다. 이 책은 윤리적으로 선을 권하는 권선서(勸善書)로서 그 사상적 원류는 「포박자(抱朴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주 태상감응편」은 19세기에 나온 「태상감응편도설언해」를 저본으로 하여 한문으로 된 원문과 언해를 함께 싣고 주석을 덧붙여 현대어로 번역하였다.

3) 「역주 목은시고」3·4
이 책의 역자들은 고려 말의 시인·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문집인 「목은고(牧隱藁)」중 시고(詩藁)에 실린 약 6,000여수의 시를 순차적으로 풀이하고 번역할 계획이다. 이 책은 그 작업의 세번째와 네번째 결과물인 셈인데, 「역주 목은시고」3은 원 문집의 권6부터 권8까지를 번역한 것이고, 「역주 목은시고」4는 권9부터 권11까지를 번역한 것이다.

(4) 「나홀로 가는 길」
이 책은 16세기 중반에서 17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유몽인(柳夢寅)의 산문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이 산문집은 경문사의 영인본 「어우집(於于集)」을 저본으로 하였는데, 역자는 필사로 전하는 여러 이본까지 참조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임진왜란과 사화(士禍) 등을 겪고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유몽인의 지조를 엿볼 수 있는 글들이 1부에 실려있고, 시중에 떠돌던 당시의 재미있는 야담과 일화가 2부에, 문장론 및 학문하는 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가 3부에 실려있다.

5) 「한국고전비평론자료집」1
이 책은 신라 원효대사부터 고려말의 목은(牧隱) 이색(李穡)에 이르기까지 총 31편의 비평문을 뽑아 원문을 싣고 번역과 해설을 하였다. 수록된 작가를 살펴보면 원효, 최치원, 임춘, 이규보, 최자, 이제현, 최해, 백문보, 이색 등이다.

6) 「누워서 노니는 산수」
이 책은 옛 사람들이 산과 절, 강과 정자를 찾아 즐겁게 노닐던 일을 적은 산수유기(山水遊記) 중 걸작들만 뽑아 옮긴 것이다. 제목은 ‘누워서 노닌다’는 뜻의 한자어 ‘와유(臥遊)’에서 가져왔다. 더 이상 산천을 찾아다니기 어려운 노경에, 예전에 다녔던 일을 스스로 써 둔 글을 되찾아 읽음으로써 유람을 대신한다는 뜻이다.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산중의 즐거움”에는 등산에 관한 글 7편이, 2부 “산사에서의 단상”에는 사찰탐방기 7편이 실려있다. 3부 “강물에 배를 띄우고”에는 뱃놀이에 관련된 글 5편이, 4부 “개울가에 집을 짓고”에는 누정(樓亭)에 관련된 글 5편이 실려있다. 이규보, 허균, 채제공, 정약용 등 모두 17명의 24편의 글이 번역되었다.

7) 「강정일당」
이 책은 정일당 강씨(姜氏)의 문집인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를 국역한 것이다. 강정일당(1772~1832년)은 조선 후기의 여류문인으로 본관은 진주(晉州), 호는 정일당(靜一堂)이다. 충청북도 제천출신이며 아버지는 재수(在洙)이고, 윤광연(尹光演)의 부인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20세에 출가한 뒤 집이 가난하여 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면서도 남편을 도와 함께 공부하였다. 경서에 두루 통하였으며, 시문에 뛰어나 당시에 문명(文名)이 높았다. 시는 대개 학문 또는 수신(修身)에 관한 내용이 많다.
또, 글씨에 능하여 홍의영(洪儀泳)·권복인(權復仁)·황운조(黃運祚) 등의 필법을 이어받았으며, 특히 해서(楷書)를 잘썼다고 한다.

8) 「몽어」
이 책은 조선말의 유학자 면우(면宇) 곽종석(郭鍾錫) 선생이 어린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몽어(蒙語)」를 국역하고 풀이한 책이다. 「몽어」는 「천자문」「훈몽자회(訓蒙字會)」같은 사자류(四字類)의 운문(韻文)을 「동몽선습(童蒙先習)」처럼 쉬운 글로 바꿔 쓴 교재이다.

 

<표2> 2002년도 개인간행 국역서 일람표

서명

편저자

국역자(역주자)

출판사

청구풍아(靑丘風雅)

김종직(金宗直)

이창희

다운샘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

이창령(李昌齡)

한상봉

다운샘

목은시고(牧隱詩藁) 3·4

이색(李穡)

여운필, 성범중, 최재남

월인

나홀로 가는 길

유몽인(柳夢寅)

신익철

태학사

한국고전비평론자료집 1

조남권, 황재국

조남권, 황재국

태학사

한국고전비평론자료집 3

조남권, 조규익

조남권, 조규익

태학사

누워서 노니는 산수

이종묵

이종묵

태학사

강정일당

강정일당(姜靜一堂)

이영춘

가람기획

몽어(蒙語)

곽종석(郭鍾錫)

유재영

이회문화사

선석유고(仙石遺稿)

신계영(辛啓榮)

윤덕진

국학자료원

편옥기우기(片玉奇遇記)

미상

조희웅

박이정

매씨서평(梅氏書平)

정약용(丁若鏞)

이지형

문학과지성사

탐라지(耽羅志)

이원진(李元鎭)

김찬흡

푸른역사

수월일고(水月逸稿)

조검(趙儉)

이정섭

수월일고 역간소(譯刊所)

망우선생문집(忘憂先生文集)

곽재우(郭再祐)

이재호

집문당

추호유고(秋湖遺稿) 상

박필채(朴苾彩)

정경주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정우당선생실기(淨友堂先生實紀)

조치우(曺致虞)

 

정우당선생실기국역간행위원회

은봉전서(隱峯全書)

안방준(安邦俊)

안동교

신조사

능허선생문집(凌虛先生文集)

박민(朴敏)

권정석

가람출판사

일재선생문집(一齋先生文集)

이항(李恒)

권오영

일재선생문집 국역추진위원회

지지당선생시집(止止堂先生詩集)

김맹성(金孟性)

김홍영

학민문화사

매우유고(梅友遺稿)

이관범(李寬範)

성백효

전통문화연구회

 

9) 「역주 선석유고」(「선석(仙石) 신계영(辛啓榮) 연구」에 수록)
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 신계영(辛啓榮)의 시문집인 「선석유고(仙石遺稿)」를 국역한 것이다. 원 문집은 1권 1책으로 1959년 후손 익교(益敎)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시는 1624년(인조 2) 종사관(從事官)으로서 일본에 가서 지은 시와 1637년 속환사(贖還使)로 청나라 심양(瀋陽)에 가면서 지은 시, 그리고 수창시(酬唱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0) 「편옥기우기」
이 책은 국민대 성곡기념도서관에 유일본으로 소장되어 있는 한문소설로 학계에 소개되지 않았던 「편옥기우기(片玉奇遇記)」를 역주한 것이다. 이 책에는 권두에 해제가 실려있고 본문에는 번역과 함께 상세한 주석이 첨부되었다. 또 원문을 활자화하여 달아놓고 원자료의 공개를 위하여 영인본을 덧붙이고 있다. 주석의 경우에는 번역문 하단에 간단한 주석을 붙이는 외에, 번역문 끝에는 고사에 대한 문헌 보주(補註)를 덧붙였다.

11) 「역주 매씨서평」
이 책은 다산(茶山) 정약용의 「매씨서평(梅氏書平)」을 학계의 다산학(茶山學) 전문가인 이지형 선생이 역주한 것이다. 「매씨서평」은 고문상서(古文尙書)라고 칭하는 「매씨상서(梅氏尙書)」의 진위(眞僞)를 정약용이 고증해 밝힌 책으로 모두 9권 3책으로 이뤄져 있다. 「매씨서평」은 정약용이 말년인 1834년(순조 34)에 저술한 것으로 「열수전서(洌水全書)」권16~19와 「여유당집(與猶堂集)」권20~24에 수록된 내용을 모아 필사한 것이다. 오랜 기간동안 준비한 역자의 꼼꼼한 주석과 번역이 돋보이는 역작(力作)이다.

12) 「역주 탐라지」
이 책은 제주도의 읍지인 「탐라지(耽羅志)」를 국역한 것으로 17세기 제주의 모습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탐라지」는 1653년(효종 4)에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이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등을 참고하고 여러 시문(詩文) 등을 수집하여 편찬한 제주도의 읍지이다. 이 책은 현전하는 제주도의 가장 오래된 읍지로서, 이후 제주도 관련 문헌들의 저본이 되었다. 또한 17세기에 전국적으로 활발한 편찬을 보이는 사찬 읍지의 전형을 지닌 책으로도 의의가 있다.

13) 「국역 수월일고」
이 책은 조선 중기의 학자 조검(趙儉)의 시문집인「수월일고(水月逸稿)」를 국역한 것이다. 원 문집은 모두 2권 1책으로 1871년(고종 8) 8대손 언빈(彦斌)·언시(彦蓍)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시는 그 분량이 많지 않고 산문중심인데, 서(書) 가운데 곽재우(郭再祐)에게 답한 것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함께 일으키자는 곽재우의 권유에 응답한 것이다. 잡저의 <유계(遺戒)>는 자손들에게 충효사상을 고취하고 독서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사의(辭意)가 매우 간절한 권선문이다. 제문 중에는 1636년 병자호란 때 순국한 사위 권극상(權克常)의 충절을 찬양하고 그 영혼을 위로한 것이 특이하다.

(14) 「국역 망우선생문집」
「망우선생문집(忘憂先生文集)」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곽재우의 시문집으로 모두 2권 1책의 활자본이다. 이 책에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왕에게 올린 소계(疏啓) 및 왕의 뜻을 봉행하며 왕복하였던 관문(關文)·서독(書牘)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록인 <용사별록(龍蛇別錄)>에는 그가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내력이 적혀 있다. 책머리에 세계(世系)·연보(年譜) 및 배대유(裴大維)가 지은 전(傳) 등이 실려있다.

15) 「국역 정우당선생실기」
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조치우(曺致虞)의 「정우당선생실기(淨友堂先生實紀)」를 국역한 것이다. 원 문집은 불분권 1책으로 16대손 문현(文鉉) 등이 편집한 것을 1967년에 간행한 것이다.

16) 「국역 은봉전서」
이 책은 조선 후기 유학자 안방준(安邦俊)의 시문집인 「은봉전서(隱峯全書)」를 국역한 것이다. 원 문집은 모두 40권 20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방준의 저술 전부를 그의 6대손 수록(壽祿)이 아들 명윤(命允)과 함께 수집하고 거기에 연보를 비롯한 부록을 정리 편집하였다. 그 뒤 7대손 명선(命宣), 8대손 숙(輓) 등이 여기에 다시 누락된 것을 첨가하고 보충해서 전라도 보성 대계서원(大溪書院)에서 1864년(고종 1)에 간행되었다.
이 책에는 중종에서 효종 초에 이르기까지 조선 중기의 기묘사화·임진왜란·동서분당·광해군 정권과 인조반정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17) 「국역 능허선생문집」
이 책은 조선 중기의 학자 박민(朴敏)의 시문집인 「능허집(凌虛集)」을 국역한 것이다. 원 문집은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저자의 증손 태무(泰茂)가 편집하여 1799년(정조 23)에 간행한 듯하다. 권두에 정범조(丁範祖)의 서문과 권말에 조술도(趙述道)의 발문이 있다.

18) 「국역 일재선생문집」
이 책은 조선 중기의 학자 이항(李恒)의 시문집인 「일재선생문집(一齋先生文集)」을 국역한 것이다. 원 문집은 모두 6권 4책이다.

19) 「국역 지지당선생시집」
이 책은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김맹성(金孟性)의 시집인 「지지당선생시집(止止堂先生詩集)」을 국역한 것이다. 원 시집은 1책으로 목판본이다. 1501년(연산군 7) 친족이 편집한 것을 김응기(金應箕)·이규(李逵) 등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조위(曺偉)의 서문이, 권말에 김응기의 발문이 있다. 저자는 시에 뛰어나고 학덕도 있어 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Ⅳ. 맺음말

이상으로 2002년도의 고전국역 현황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대학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우리 고전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고전국역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몇가지 점을 덧붙이면서 글을 마무리하겠다.
첫째, 고전국역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의 고전을 발굴하고 정리하며 연구하고 번역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 국역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提高)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를 담당하고 있는 우리 국학계의 새로운 각오와 다짐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각계 각층의 관심과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 지면을 빌어 우리 문화 발전을 바라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동참을 호소한다.
둘째, 고전을 정리하고 국역을 담당할 전문 국역기관의 규모를 확대하고 육성해야 한다. 국역이 필요한 가치 있는 한문 전적, 고문서(古文書), 고어(古語)로 기록된 한글 고전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것들은 우리의 역사, 문학, 철학을 연구하기 위한 1차 자료들이다. 대학 교수나 학자 등 개개인에게 수많은 자료의 국역을 다 맡길 수는 없다. 그들은 개인의 관심영역에 따라 연구를 수행하고 필요한 자료만을 국역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보다 폭넓게 자료를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국역의 계획을 세우며, 색인과 데이터베이스(DB)의 작업을 담당하는 것이 국역기관이다. 물론 현재 국역기관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좀 더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국역기관에 대한 예산을 과감히 늘려서 직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며, 고전국역과 정리를 담당할 저변인력을 양성하고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 筆者 : 하정승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연구원

<박석무 칼럼>왜 고전국역원인가

[내일신문 2006-08-03 17:27]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는 1965년에 설립되었다. 전통문화의 계승을 기치로 내세운 지 40년이 넘었다. 국가에서 도와주는 보조금이 운영비와 사업비의 중심이 되고는 있으나, 부족하기 짝이 없는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 경제 10대국에 들어가는 나라치고는 참으로 딱한 일이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사심없는 노력과 희생적인 공헌에 의해 결과적으로는 대단한 업적을 이룩해 놓았다. 한문으로 된 고전 102종류 984책을 국역하여 출판하였고, 2005년 10월로 기준하여 우리나라 역대 문집들을 총정리한 ‘한국문집총간’ 350책을 완간하였다. 최치원(고운)의 ‘계원필경’에서 한말의 학자 조긍섭(1873~1933)의 ‘암서집’에 이르는 662명의 문집 663종이 실렸다고 한다. 옛 책으로 3458권, 1억5만여자, 20년이 걸린 작업 끝에 이룩한 결과다.


한문고전 102종류 984책 국역
중국이 오래 전에 문헌 3458종 7만9582권의 ‘사고전서’를 발간한 것에 비하면 정말로 왜소하지만, 예산이나 동원된 인원으로 보면 그래도 훌륭하게 일한 결과에서 나온 것임은 분명하다. 어쨌든 그런 결과로 우리는 귀한 한문고전의 원전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귀중한 민족의 고전들을 한문을 모르는 일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번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뛰어난 학자들인 성호 이익이나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가.

앞으로도 간행해야 할 문집총간이 수없이 쌓여있는 것도 문제지만, 완간된 350책의 문집총간만 번역하는 일도 얼마나 많은 세월이 소요될지 계산하기도 힘든 상태이니, 막막하여 하늘을 쳐다보아도 답답할 지경이다.

각 대학의 도서관 한적(漢籍)부나, 공공도서관에 쌓여있는 그 많은 한문으로 된 고전들은 언제쯤이나 번역될 것인가. 그나마도 한문을 정규적으로 배운 세대들은 거의 대부분 노쇠하거나 세상을 뜨는 지경이고, 본격적인 한문교육을 받은 사람은 수효도 적지만 완숙하게 한문을 번역하는 일에는 미흡하기 그지없어, 이대로 가다가는 한문을 배우지 못한 세대들은 우리의 고전에는 까막눈이고 마는 사태에 이르지 않을까 태산 같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문 고전을 정리하고 번역하는 일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민족문화추진회에서는 당국의 협조를 얻어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를 확대 개편하여 가칭 ‘고전국역원’ 같은 정부출연기관을 세우자는 논의를 적극 진행하고 있다. 국역자 양성이 시급하고, 미약한 재정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국역사업을 위해서는 국가나 정부의 배려가 앞서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문화의 전승이나 외부로부터의 수용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 창조 없이 어떻게 민족문화가 발전하고 나라의 융성이 뒤따를 수 있겠는가. 전통을 무시하고 고전을 천대했던 나라가 제 역할을 했던 경우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가. 이제는 경제도 과거보다 무척 발전하였고, 고전에 대한 관심도 예전보다는 커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민족의 뿌리와 역사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민족 고전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의미가 커진다. 경제적 조건이 우리보다 훨씬 취약한 북한에서도 고전번역사업에 열을 올리고 큰 성과를 거둔 것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이 우리보다 훨씬 먼저 번역되었고, 다른 고전들도 우리보다 앞서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정부·국회 법제정 서둘러야
거대한 문화사업은 민간단체나 개인들이 하기에는 너무 힘이 드는 일이다. 우선 상업성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개인이나 민간단체에서 할 수 있겠는가. 지방자치단체가 활성화되면서 지방의 갖가지 문화사업들이 속속 진행되는 것만 보아도 민간에서 하는 것보다는 정부가 해야만 활성화된다는 것을 그냥 알 수 있게 된다.

아직 전통적 한문교육에 의해서 성장한 한학자들이 몇몇 분이라도 살아있는 지금 당장, 고전국역원을 세워 번역에 필요한 원전 독해력을 지닌 국역자 양성 사업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이 일에 시간을 천연시킬 이유가 없다. 정부와 국회는 급히 서둘러 고전국역원법을 제정하고 예산을 확보하여 일을 진행해야 한다.

큰 예산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이야기다. 현재 민족문화추진회에 보조하는 금액에 20억~30억원 정도만 더 출연하면 국역원은 설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는 애국자나 정부나 국회 관계자들은 하루 빨리 서둘러 시급한 국역원이 탄생되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전국프리즘] "우리 고전 번역할 전문가 많이 키우자"
이름 : ()   날짜 : 2006.08.09   조회 : 166
2006-08-09

영국의 유명한 시인 키츠는 호머를 처음 만난 감격을 새로운 행성을 발견한 천문학자의 환희, 혹은 이른바 '신대륙 발견' 시 서구인으로는 처음으로 태평양을 맞대하게 된 어느 군인의 흥분에 비유한 바 있다. 희랍어를 전혀 모르던 그가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채프먼이라는 번역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통해 영시 사상 한 이정표를 긋는 불멸의 소네트 한 편을 남길 수 있게 된다.

문화의 핵심에는 글이 있다. 글을 통하지 않고는 문화고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고 제대로 계승 전수될 수 없다. 유럽의 문예부흥기에 나라마다 앞다퉈 희랍과 로마의 고전들을 자국어로 번역한 것도 이러한 인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요즘 '문화의 세기'를 앞세우며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운위하면서도 정작 우리 고전에 대한 번역을 등한시하는 것은 분명 반문화적 책임 방기라 아니할 수 없다. 핑계야 왜 없겠는가.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왜곡.압살하려 했던 식민통치, 그 이후의 미군정, 곧이어 안방을 차지한 서구식 대학 중심의 교육제도와 입시지옥, 그리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등. 온 나라가 힘을 모아 우리의 고전을 비하하고 우리의 전통을 끌어내리는 데 열심이었다. 그 뒤를 이은 영어 광풍이라니!

그 결과로 우리의 전통고전은 골방 신세가 되고 전문가들도 변방으로 밀려나 대학이나 전문 연구기관의 언저리에도 끼지 못하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말로는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한 세기도 넘지 못하여 캄캄 절벽과 부닥치게 된다. 미국의 일천한 역사를 조롱하지만 정작 그들 독립시기에 우리 선조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전통문화의 지평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 중심에 한문으로 된 우리 고전의 번역작업이 있다. 우리 선조들의 사상과 예지, 그 문향(文香)을 담고 있는 그것을 우리의 당당한 전통으로 안아야만 반만년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되살릴 수 있다. 한문 고전을 괄호로 묶는 한 우리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를 넘어서기도 쉽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챙겨야 한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한국문집총간'을 번역하는 데만도 현재의 인력으로는 수십 년이 걸린단다. 지방 곳곳의 향촌에 묻혀 있는 문집 등을 포괄하자면 현재의 수백 배가 넘는 국역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서울을 제외하고 전북지역에 전국 유일의 국역연수원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다면 전통문화 중심도시에 부끄러움만 덧칠하는 꼴이 될 것이다. 연수원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그 지원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 한 영문학자의 열변이, 그야말로 영문 모르는 객담으로 치부될 날이 하루속히 왔으면 좋겠다.

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